활동소식

활동소식

오키나와 평화운동가 ‘치바나 쇼이치 (知花昌一)’스님 초청강연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19-05-27 12:25 조회6,543회 댓글0건

첨부파일

본문

오키나와 평화운동가 치바나 쇼이치 (知花昌一)’스님 초청강연회

나는 왜 평화운동가에서 스님이 되었는가

일시 : 201963() 7:00-9:00 pm

장소 : 불교환경연대 그린담마홀 (02-720-1654 / 010-9656-1654)

(안국역 4번출구 운현궁 뒤 경운학교 바로 옆 운현궁의 아침건물 3)


일본이면서 일본이 아닌 <오키나와>의 평화운동가 치바나 쇼이치님이 왜 스님이 되었는가?

오키나와는 본래 류큐왕국으로 독립국가였지만 메이지 이후로 일본에 단독으로 점령되었습니다. 1945년 미국의 상륙작전에 맞서 일본은 오키나와 주민들에게 '죽어서도 나라를 지키라'는 헛된 구호에 떠밀려 많은 민간인들이 학살되거나 집단자결을 강요받았습니다. 일본 본토사수를 위한 사석이 된 오키나와 지상전쟁에서 오키나와 주민 12만명을 포함하여 총 18만명이 사망했습니다.

승리한 미국은 오키나와를 미군기지로 삼았고 52년 류큐정부가 세워졌지만 20년 뒤인 1972년 미국에서 일본으로 시정권이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가해와 차별과 계속 주둔하는 미군기지로 희생되는 오키나와 주민들을 위한 평화운동을 펼쳐왔으며 일본본토에 저항하는 의미로 일장기를 불태워 유명해진 치바나 쇼이치 선생이 사람에게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불교에 귀의하여, 정토진종 동본원사파 스님이 되었습니다.

201963일 월요일 저녁 7시에 오키나와 평화운동가가, 왜 스님이 되었나라는 이야기와 우석대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서승 소장님의 이야기를 듣습니다.

치바나 쇼이치(知花昌一) 스님 

오키나와의 반전·평화운동가 1948년 오키나와 요미탄에서 태어났다

식료품점을 운영하며 살아가던 치바나 쇼이치는 1987년 오키나와 국민체육대회에서 일장기를 불태운 사건으로 지명수배 받아 유명해졌다.

이 사건으로 그는 우익의 협박에시달리기도 했지만 이후에 요미탄 마을 의원으로 당선. 3선 연임(1998-2010)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 오키나와 전투에서 대규모의 민간인이 희생,학살 된 것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물으며, 오 키나와에 주둔한 미군기지 철수를 외치는 등 반전,평화운동을 해오고 있다

대담 : 서 승 

1945 일본 교토출생, 서울대 유학중 보안사에 불법체포되어 고문을 당하고 분신을시도하다 온몸에 중화상을 입음. 재일교포학생 간첩단사건으로 동생 서준식과 함께 기소되어 19년간 투옥됨

일본 리츠메이칸 대학 교수역임

현 우석대학교 석좌교수

우석대학교 동아시아평화연구소 소장

통역 : 이호윤 (리츠메이칸 대학) 

  

공동주최 :

| 불교환경연대 | 신대승네트워크 | 실천불교전국승가회 | 위드아시아 정의평화불교연대 | 합천평화의 집 

 

899f6b87ff08f6d1c88b7e392081962f_1558927770_0622.jpg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