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사의 명장면: 부처님-니디의 만남 부처님을 비난하는 사왓티 사람들 부처님의 생애 중 감동적인 순간은 무수하다. 부처님과 변소치기 니디와의 만남은 불교의 평등사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명장면이다. 사왓티 거리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과 마주친 니디는 당황하여 더럽고 냄새나는 몸을 숨기려다 그만 동통을 깨뜨리고 말았다. 똥 범벅이 되었다. 똥물은 부처님의 가사에도 튀어 얼룩을 지게 했다. 부처님은 니디를 강가로 데려가 씻겨주었다. 그리고는 출가를 권했다. “니디야, 출가하여 나의 제자가 되지 않겠니?” 부처님에 귀의한 사왓티 사람들이었지만, 사람은 평등하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알지 못했다. 부처님을 비난하는 목소리도 들렸다. “세존께서는 왜 그런 천한 자에게 출가를 허락하셨을까?”똥 푸던 니디에게 머리를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정치‧경제‧사회‧문화 등 인간 삶을 조건지우는 것들의 불평등은 성벽처럼 견고하고 드높다. 불교의 발상지 인도의 계급차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2천 개가 넘는 계급구조가 사람의 귀천을 가르며 직업을 구획하고 있다. 힌두 신화에 따르면, 시바신이 휴식 중 싼 똥에서 태어난 이들이 하리잔(불가촉천민)이다. 이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하는 아웃 카스트다. 사성계급[제1계급 바라문 또는 브라만(Brahman:사제), 제2계급 크샤트리아(Kshatrya:왕족, 무사), 제3계급 바이샤(Vaisya:농민, 상인 등의 서민), 제4계급 수드라(Sudra:노예)]에 속하지 않는다. 힌두의 신화는 인도만 지배하고 있지 않다. 일부 부처님을 따르는 사람들의 생각과 말 속에도 힌두의 신화는 똬리를 틀고 있다. “누린내 나는 아주까리를 마찰시켜 불을 피우듯, 더러운 진흙에서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듯, 종족과 신분과 직업으로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는 없습니다. 오직 지혜와 덕행만이 비구의 값어치를 정할 수 있습니다. 신분이 낮고 천한 직업을 가졌더라도 행위가 훌륭하다면, 여러분, 그 사람을 공경하십시오.”[조계종교육원 편찬위원회, 『부처님의 생애』] | | | 지난 11일 서울 수송동 불교여성개발원 교육관에서 로카미트라 법사와 조성택 화쟁문화아카데미 이사장(고려대 교수), 민정희 신대승네트워크 아시아불교싱크탱크 사무총장이 좌담을 했다. 이 좌담회는 신대승네트워크 아시아불교싱크탱크(대표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와 화쟁문화아카데미가 공동 주관했다. | 붓다의 가장 충실한 실천자는 누구인가? 1956년 10월 14일이었다. 인도 나그푸르에서 불교 개종식이 열렸다. 30만 명의 불가촉천민이 결집하여 힌두교에서 불교로 개종했다. 몇 년 지나지 않아 300만 명이 불교에 귀의했다. 암베드카르(Bhimrao Ramji Ambedkar, 1891-1956)가 그 중심에 있었다. 암베드카르는 붓다의 가르침을 자유‧평등‧박애 그리고 정의라는 가치로 재해석했다.[이명권, 『암베드카르와 현대 인도불교』] 붓다 이후 2500년이 지난 인도에서 붓다의 가르침은 구현되었다. 암베드카르는 붓다의 가르침에 가장 충실한 실천자였다. | | | 로카미트라 법사 | 암베드카르를 이어 인도의 불교 부흥과 평등과 인권을 고양하는 운동은 지속되고 있다. 상카락시타에 이어 로카미트라 법사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1947년 런던에서 태어난 로카미트라는 1975~1977년 인도 방문 중 암베드카르의 불가촉천민 해방운동에 감화를 받아 인도에 머물며 불가촉천민들의 신분해방과 불교개종운동, 인권·평화운동을 펼치고 있다. 2008년 제12회 만해대상 평화상을 수상했다. 로카미트라 법사가 신대승네트워크 초청으로 한국에 왔다. 지난 11일 서울 수송동 불교여성개발원 교육관에서 조성택 화쟁문화아카데미 이사장(고려대 교수), 민정희 신대승네트워크 아시아불교싱크탱크 사무총장과 좌담을 했다. 이 좌담회는 신대승네트워크 아시아불교싱크탱크(대표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와 화쟁문화아카데미가 공동 주관했다. “‘헬조선. 흙수저’라는 말이 지칭하듯이 신자유주의 격차사회에서 또 다른 불평등에 의한 새로운 불가촉천민은 우리 주변에 없는지 성찰하고 반추해 보면서, 아시아 대승보살운동의 협력을 논하고자 하는 대담의 자리를 마련했다.” 조성택 교수는 좌담회 시작에 앞서 인사말에서 “불교로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하고 있다”고 로카미트라 법사를 평가하고, 그의 법명 로카미트라는 ‘세상의 친구, 즉 세우(世友)’라고 소개했다. 민주주의는 사람들의 소통, 공유, 나누는 삶에 관한 것 개인의 변화와 사회 변화의 접점에 상가가 있다 | | | 워킹 붓다 | 좌담에 앞서 로카미트라는 인도불교의 현황과 자신이 속해 있는 범세계불교교단우의회의 활동을 소개했다. 그에 따르면, 인도의 불교인구는 4500만 명, 날로 늘어나고 있다. 암베드카르의 불교 개종운동 이후 10배 이상 늘었다. 이런 현상을 ‘인도의 평화로운 불교혁명’이라고 했다. 인도의 계급 차별은 완화되지 않고 있다. 12억의 인도 인구 중 1/6인 1억8천만 명이 여전히 불가촉천민이다. 가장 더러운 일을 하며,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가난하게 산다. 사원에 출입할 수 없으며, 교육도 받지 못한다. 강간과 폭력에 방치되어 있다. 범세계불교교단우의회는 20여 곳에 지역센터를 열어 주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불교와 인권 교육을 하고 있는데, 8개월 동안 숙식을 하며 억압적인 사회현실을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를 배운다. 인도 국회의사당 앞에 암베드카르의 동상이 서있다. 그는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노력했다. 민주주의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라는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의 소통, 공유, 나누는 삶에 관한, 즉 삶의 태도라는 것이다. 암베드카르에게 담마는 윤리와 같다. 진정한 정법은 자기정화와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며, 이 두 가지는 같이 가는 것이라고 했다. 불법의 실천은 세상에 어떻게 참여하는 것과 연관된다. 보살의 육바라밀행이 핵심이다. 상가는 세상에 참여하며, 안주하지 않는다. 개인의 변화와 사회 변화의 접점에 상가가 있으며, 도덕성을 계발하고 서로 간에 능숙하게 대하는 것에 대해 얘기해야 한다. 상가 안에서 자유와 평등, 박애를 증진시켜야 한다. 우리가 구현하려는 세상의 작은 세계가 상가다. 암베드카르의 죽음 이후 정치인들이 새 불교운동을 파괴했다. 그렇지만 불가촉천민이 사는 어느 마을이든 불교공부를 하길 원하고 있다. 암베드카르가 세운 한 대학의 교정에 불상이 있는데, 앉아있는 불상이 아니다. 걸어가는 붓다다.
| | | 좌담을 하고 있는 민정희 사무총장, 로카미트라 법사, 조성택 교수. | 좌담: 로카미트라-조성택-민정희 앉아계신 붓다, 걸어가는 붓다 조성택: 최소한 종교는 이성과 과학과 조화되어야 한다. 자유·평등·박애의 기조가 있어야 한다. 가난을 정당화해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와 종교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준 것 같다. 동아시아 불상은 거의 좌상이다. 스리랑카와 태국에 입상은 있으나 동적인 불상은 없다. 로카미트라: 앉아계신 붓다도 여전히 움직이고 있다. 조: 붓다의 서사를 바꾸어야 하지 않나? 로카: 바로 그 점이 대승불교가 등장한 계기다. 개인과 사원 중심에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불교로 전환한 것이다. 상좌부가 지혜를 강조했다면, 대승에 와서는 자비를 강조했다. 그러나 지혜 없는 자비는 있을 수 없다. 지혜와 자비는 같이 가야 한다. 참여불교라는 말은 이상한 말이다. 불교는 원래 참여적이다. 그러나 참여를 강조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용어다. 달라이라마와 틱낫한 스님이 보여주고 있다. 암베드카르를 참여불교에서 평가한 적은 없으나, 암베드카르는 참여불교의 최전선에 계셨다. 조: 자본주의와 불교, 둘의 상관관계를 어떻게 보나? 로카: 이분법을 넘어서는 전망이 필요하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는 존중되어야 하며, 사회주의의 공유의 가치는 더 나은 길을 찾아나가야 한다. 극단적인 빈곤은 넘어서야 한다. 민정희: 암베드카르의 불교 개종운동 이후 대만 불교에서 관심을 가지고 지원하고 있다. 불가촉천민의 불교 개종운동에 대한 세계불교의 관심은 어떤 상황인가? 로카: 비난하려는 게 아니다. 많은 훌륭한 불교지도자들이 (인도의 상황을) 모르고 있다. 그래서 서구 쪽으로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민: 불가촉천민의 불교 개종운동에 왜 관심을 기울여야 하나? 로카: 인도 불교의 성장은 세계불교에 긍정적인 영향이 있을 것이다. 전통적으로 보면 불교의 전파는 왕이 받아 위에서 아래로 전해졌다. 인도의 불교는 밑에서부터 전해지고 있다. 가장 억압적인 상황에 놓여있지만 폭력을 사용하는 데 관심이 없다. 조: 평화적인 혁명이 가능한가? 로카: 암베드카르는 폭력적인 방법에 반대했다. 장기 지속적이어야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수행으로 세상을 더 낫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 암베드카르의 연설문 중 ‘민주주의 기초로서의 불교’를 보면, 사회적이고 지적인 경제, 정치적 자유를 가르쳐줬다. 로카: 경제 자유는 관계론적이다. 남에게 불이익을 끼치면서 생계를 해결하려 해서는 안 된다. 청중과 문답 “좀 더 나은 출가승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암베드카르는 취업할당제를 제안했다. 효과가 있는가? 로카: 까다로운 질문이다. 구자라트를 비롯한 주별로 법이 있다. 할당제는 반발에 부딪쳤다. 완벽하게 새로운 대안으로 적용되지 못했다. 정부직위에 달리트들이 진출하지 못했다. 다른 계급에서 반대했기 때문이다. -인도 불가촉천민의 고통은 가난 때문인가? 제도와 관습 때문인가? 로카: 가난과 사회적 억압은 맞물려 있다. 힌두 관점에서 보면, 카스트는 과거의 업에 의해 정해진다. 업을 바꾸는 것은 큰 죄가 된다는 것인데, 이런 계급 개념이 내면화되어 있다. 불교의 업설도 잘못 이해하면 오용된다. -미래학자들은 20년 내 경제가 최대로 성장할 나라로 인도를 꼽고 있다. 그러면 신분제가 완화되지 않을까? 평화적인 방법은 시간이 걸리니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이 필요치 않나? 로카: 불교로서 충분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핵심은 불교이지만 사회 개혁적 방법이 같이 따라야 한다. -간디를 어떻게 평가하나? 로카: 간디도 불가촉천민의 입장을 대변하려 했지만 카스트를 바꾸려하지는 않았다. 카스트에 따른 직업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간디는 브라만과 화장실 청소하는 불가촉천민의 인격이 동등하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불가촉천민들은 간디를 싫어했다. 불가촉천민의 직업을 철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간디는 붓다를 좋아했지만, 불자라고 말할 수는 없다. -달리트들이 정치에 동원된다는 얘기가 있다. 로카: 불가촉천민의 삶의 조건이 취약하기 때문에 정치적 제안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사실이다. 암베드카르가 폭력에 기대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하다. -인도에서는 승가의 개념을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가? 로카: 사찰이 아닌 곳에서 상가를 형성하고 있다. 나도 상가의 일원이다. 사원만이 상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의미의 상가는 삼보에 귀의하는 누구나 부처님이 말씀한 사부대중이다. (좌담회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하는 중 로카미트라는 “좀 더 나은 출가승단을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아시아 불교계 승단과 승가의 소승화와 부패와 타락, 정치권력과의 결탁 현상이 장기 지속되고 있는 상황을 두고 한 말로 이해된다.) -인도불교와 한국불교는 서로 어떻게 교류하고 협력해야 하는가? 로카: 소통이 중요하다. 서로가 와서 보고, 그러면서 소통이 이뤄진다. |